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곡성 결말 해석 삭제 장면 일광 정체

by 김규옥 2025. 7. 13.
반응형

 

 

곡성 결말 해석, 삭제 장면으로 본 일광의 진짜 정체

2016년 개봉 이후 거의 10년이 흐른 2025년 현재까지도,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은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문제작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오컬트 호러를 넘어, 믿음과 의심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심리를 파고드는 이 영화의 결말은 여전히 수많은 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배우 황정민이 한 방송을 통해 결정적인 삭제 장면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오랜 기간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퍼즐의 조각들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본 포스트는 삭제 장면의 정보를 포함하여, 각 인물의 상징성과 역할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곡성>의 다층적 의미 구조를 해부하고자 합니다.

일광(황정민): 신의 대리인인가, 악의 공모자인가?

영화 <곡성>의 해석 논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단연 무속인 일광입니다. 그는 구원자처럼 등장하여 관객과 주인공 종구를 동시에 현혹시키지만, 그의 모든 행적은 정교하게 계획된 기만이었습니다.

### 살(煞)굿의 진실: 희대의 교차 편집 미장센

일광의 굿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탁월한 교차 편집(Cross-Cutting) 시퀀스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관객은 일광이 외지인(일본인)에게 살을 날리고, 그로 인해 외지인이 고통받는 것처럼 인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감독의 의도된 오도(Misdirection)입니다. 실제 분석에 따르면, 일광의 굿은 종구의 딸 효진을 겨냥한 '살(煞)'이었으며, 동시에 외지인은 자신의 주술 의식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외지인이 고통스러워한 진짜 이유는 그의 제단에 마을의 수호신 '무명'이 나타나 의식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즉, 일광과 외지인은 서로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동일한 목표(효진의 파멸)를 위해 협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상징으로 드러난 정체성: 훈도시와 좌측통행

일광의 정체는 대사가 아닌 시각적 상징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가 굿을 마친 후 속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일본 전통 속옷 '훈도시(褌)'는 외지인과의 민족적, 영적 동질성을 암시하는 결정적인 단서입니다. 또한, 그가 자신의 차량으로 곡성을 떠나려다 다시 돌아올 때, 무의식적으로 일본의 차량 통행 방식인 좌측 차선을 이용하는 장면이 포착됩니다. 이는 그의 근본이 우리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임을 시사하는 치밀한 연출입니다.

### 삭제 장면의 확증: 명백한 협력 관계

배우 황정민이 언급한 삭제 장면은 이러한 모든 해석에 쐐기를 박습니다. 해당 장면은 종구 일행에게 공격당해 만신창이가 된 외지인을 일광이 자신의 차에 태워 이동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광은 외지인의 더러워진 옷을 갈아입히고 그를 부축하며, 이는 두 사람이 단순한 협력자를 넘어 상하 관계 혹은 긴밀한 동맹 관계에 있음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이 장면이 최종 편집에서 삭제된 것은, 감독이 관객에게 '의심'이라는 감정 자체를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삭제 장면의 존재가 알려진 이상, 일광은 악의 하수인이자 적극적인 공모자였다는 해석이 가장 높은 설득력을 지닙니다.

외지인과 무명: 악마와 신성의 대립

<곡성>의 서사는 외지인으로 대표되는 '악'과 무명으로 대표되는 '선'의 대결 구도를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정체를 명확히 보여주지 않고, 끊임없이 관객의 믿음을 시험합니다.

### 미끼를 던지는 자, 외지인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외지인이 낚시를 위해 미끼를 끼우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은유입니다. 그는 단순한 살인귀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의심'이라는 미끼를 던져 영혼을 낚는 존재, 즉 악마(Devil)의 현현입니다. 나홍진 감독이 직접 언급했듯, 영화의 주제는 누가복음 24장 38-39절("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과 맞닿아 있습니다. 외지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실체를 바꾸고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종구와 관객 모두를 현혹시키고, 그 의심의 틈을 파고들어 파멸을 완성합니다.

### 마을의 수호신, 무명(천우희)

무명은 그 정체에 대해 가장 많은 논란이 있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상징들을 종합해 볼 때, 그녀는 곡성이라는 마을을 지키는 토착신, 즉 '성황신(城隍神)'에 가장 가깝습니다. 그녀는 사건의 피해자 옷을 입고 현장에 나타나며, 외지인의 힘을 직접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신의 힘은 인간의 '믿음'을 기반으로 발현됩니다. 종구가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의심하는 순간, 그녀가 쳐놓은 금줄의 보호막(닭이 세 번 울 때까지)을 지키던 꽃들이 시드는 장면은 이를 명백히 보여줍니다. 종구의 불신이 신의 개입을 무력화시키고 비극을 자초한 것입니다.

종구(곽도원): 의심의 덫에 걸린 비극적 인간

<곡성>은 결국 평범한 인간 '종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딸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그의 모든 선택은 의심과 공포에 의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 믿음의 시험대: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영화의 클라이맥스, 종구는 무명과 일광 사이에서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무명은 "닭이 세 번 울기 전에는 절대 집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일화를 명백하게 차용한 것입니다. 닭 울음소리는 구원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였지만, 일광의 전화 한 통("그년은 귀신이고 외지인이 진짜 살을 푸는 거여!")에 흔들린 종구는 결국 믿음을 저버리고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의 성급한 불신이 바로 악마가 파놓은 마지막 함정이었습니다.

### 관객을 향한 질문: 당신이라면 믿을 수 있었는가?

종구의 비극은 그가 어리석거나 나약해서가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공포와 가족의 위기 앞에서 이성적인 판단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종구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라면 저 상황에서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했겠는가?" 영화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대신, 관객 스스로가 의심의 주체가 되어 혼란을 겪게 만듦으로써 <곡성>이라는 거대한 주술에 동참시킵니다.

결론: 2025년, <곡성>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

<곡성>은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닙니다. 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알레고리입니다. 가짜 뉴스와 선동이 난무하고, 눈에 보이는 것조차 믿기 어려운 시대에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영화의 근원적인 질문은 개봉 당시보다 더욱 큰 울림을 줍니다. 삭제 장면의 발견으로 일광과 외지인의 관계라는 사실관계(Fact)는 명확해졌지만, 영화가 던지는 '믿음'과 '의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렇기에 <곡성>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분석되고 회자될 불멸의 걸작으로 남을 것입니다.

반응형